水淸 분산(墳山) 택지(擇地) 설화(說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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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현 작성일23-06-25 18:38 조회230회 댓글0건본문
내가 유시에 집안 어른들(동산파 34世 載祺)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별좌공(別坐公) 상중에 지사가 현 묘지를 추천하면서 曰“이곳이 진틀(濕地)이기는 하나 용두혈(龍頭穴)로 대지라 자손이 크게 창성할 것이다. 但 장자가 요절(夭折)할 것이니 상주들이 알아서 결정하라” 하였는데 동생들(世春·世倫·世仁)은 이구동성으로 “형님이 요절한다니 절대 불가하다” 하였지만 형(世眞)은 동생들이 창성하면 나는 만족한다 하고 지금 자리에 입장을 하게 되었다. 입장직후 지사가 지팡이로 수보 아래 언덕 밑을 후비니 샘물이 솟고 이어 묘역주위의 물이 말랐으며 과연 미기(未幾)에 世자眞자가 별세하셨다. 지사가 말 한대로 손자대에 문과급제가 셋(묵옹·동계·상암)이 났으며 자손이 흥성하고 문호가 창대하였다. 世자眞자는 무후지만 종후손(從後孫)이 배위의 관향을 모르는 채 세일사(歲一祀)를 이어오고 있다.
참고로 내 외구(外舅=장인 李麟采1890-1958)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전주이씨의 담양군파(潭陽君派) 단성 입향조가 별세하여 왕실에 부고를 올렸더니 국풍(國風=國家的 風水)을 보내 “명당을 잡아주라” 하였는데 상가에 도착하여 오는 길에 보아 둔 수청 큰 산소 자리를 추천하니 당시에는 진틀(濕地)이라 양반을 우롱한다고 고방에 가두었다. 며칠 후에 “석방하여 주면 吉地를 다시 찾겠다”고 하여 풀려나서 생비량 하능 먹우재를 추천하여 입장하게 되었고 돌아가면서 문상 온 世자眞자에게 왈 “李氏 가 福이 없어 大地를 차버리니 자네가 차지하게” 하여 권씨가 입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씨 족보를 상고한바 입향조 순수당(順受堂-휘:仁禧 1554-1613 世宗大王의 5世孫)이 한성좌윤(현 서울부시장)을 지내고 1613년에 생비량에 묻혔으나 정부인(貞夫人)은 선몰(先沒)하였을 수 있으니 시기와 행적이 어느 정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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