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 受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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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현 작성일25-06-06 10:22 조회14회 댓글0건본문
설의 受難
일본 강점기 때 총독부에서는 조선 사람들에게 양력설을 쇠도록 강요했다. 음력설 쇠는 것이 우리민족의 오랜 전통이라 말을 잘 듣지 않자. 면서기나 경찰을 동원하여 음력설날 아침에 마을에 들이닥쳐 설이라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제사지내고 세배하러 다니면 적발해 처벌했다.
일본이 왜 이렇게 음력설 쇠는 것을 금지하려 했을까? 1894년 갑오경장 때부터 양력설을 쇠도록 강요했는데 겉으로는 세계조류에 따라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끊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연말에 사신을 보내 중국에서 만든 달력을 받아와 다시 제작해 반포하여 썼다. 동양의 관습에는 황제만 달력을 만들 수 있고 제후급 나라는 자체적으로 달력을 만들어 쓸 권한이 없었다. 일본은 조선을 먹기 위해서 첫째 중국과의 관계를 끊게 하기위해 양력을 쓰도록 강요했다. 또 유구한 전통이 있는 음력설을 쇠면 자연히 조상을 숭상하게 되고 조선의 뿌리를 생각하고 전통을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기나라를 광복하겠다는 마음을 기질 수 있다고 생각해 강력하게 음력설을 못 쇠게 했다.
일본의 이러한 속셈을 모르고 1948년 건국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조류에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해 양력설을 쇠도록 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양력설을 쇠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음력설 쇠는 것은 미개적이고 미신적이라 생각해 음력설날에는 관공서 학교 국영기업체 등에서 정상적으로 근무하도록 특명을 내렸다. 그리고 수시로 학교 등에서도 양력설을 쇨 것을 권장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그래도 한국국민 대다수는 음력설을 쇠었다. 음력설날 정상적으로 직장에서 근무하려면 아주 불편했다. 음력설이 평일인 경우 고향이 먼 공무원은 전날 늦게까지 근무하고 밤에 고향에 도착해서 설날 새벽에 세배 드리고 차례 일찍 지내고 다시 직장에 정상출근해야 헀다. 자기차가 없는 시절이라 정말 괴로웠다.
이런 현실을 알고 1985년 전두환 대통령 때 비로소 음력설을 민속절(民俗節)이라 해서 하루 놀게 했다. 그러나 하루로는 별로 나아질게 없었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 때 드디어 지금처럼 음력설을 공식인정해 3일동안 연휴를 즐기도록 했다. 올해가 갑오년이니 갑오경장이 있었던 해로부터 120년만이다. 100여년 동안 음력설이 심한 수난을 당하다가 이제 겨우 정상적인 음력설이 되었다.
동족마을을 이루어 농사짓고 지내던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부모형제도 1년에 몇 번 못 만나는 시대다. 설, 추석 명절 때문에 친척들의 얼굴도 보고 그 동안 못 나눴던 정다운 이야기도 나눌수 있게 되었다.
생활수준은 높아졌지만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마음터놓고 여유 있게 이야기 나눌 분위기가 못되니 알고보면 사람마다 다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길이 막히는데도 몇시간 씩 차를 몰고 고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 옛날 처럼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가 그립기 때문이다.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허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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