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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득성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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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현 작성일23-09-30 16:22 조회2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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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 시조 태사공은 본래 신라 왕족 金氏였다. 

지면 제약으로 縮約文으로 올리니 첨부파일을 열어 열람바랍니다,

天授 12年 己丑(西紀 929) <新羅 敬順王 3. 後百濟 甄萱 38>

12월에 견훤이 고창군(古昌郡 경북 안동)을 포위함에 <2년 전 견훤의 羅都 유린(蹂躪)>에 대한 울분을 삭이고 있던 삼태사는 항전(抗戰)에 돌입하였다.> 왕이 가서 이를 구원하려고 예안진(禮安鎭)에 머무르면서 여러 장수와 회의에서, 퇴로를 걱정할 정도로 사기가 침체하였는데  유금필(庾黔弼)의 건의를 받아들여 금필이 이에 저수봉(猪首峯)에서 힘껏 싸워서 크게 이겼다. <우리 始祖()께서 여러 사람에게 모의(謀議)하기를 甄萱은 의리(義理)상 한 하늘 아래에 같이 살 수 없는 원수(不共戴天)이니 어찌 王公(고려 태조)에게 돌아가 위로 임금의 원수를 갚고 아래로 민명(民命)을 살려 통분(痛忿)을 설치(雪恥)하지 않으리오.”하고 태조를 맞아 항복하였다.> 이 그 고을에 들어가서 금필에게 이르기를, “오늘의 일은 경의 힘이다." 하였다.

天授 13年 庚寅(西紀 930) <新羅 敬順王 4. 後百濟 甄萱 39>

봄 정월 <丙戌=21-高麗史>에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고창군(古昌郡)의 병산(甁山)에 진을 치고 견훤은 석산(石山)에 진을 치니, 서로의 거리가 5백 보쯤 되었다. 드디어 서로 싸우자, 견훤은 패하여 달아나고, 시랑(侍郞) 김악(金渥)을 사로잡았으며, 죽은 자가 8천여 명이었다. <庚寅=25(勝捷 4日後)>고창의 성주 김선평(金宣平)을 대광(大匡=正二品)으로, 권행(權行)과 장길(張吉)을 대상(大相=正四品)으로 삼고, 그 고을을 안동부(安東府)로 올려서 식읍으로 삼았다. <특히 우리 시조에게는 은 기미(幾微=기회)에 밝아 權道達成했다.”하고 으로 賜姓하였다. 이날을 권씨 得姓 紀元으로 삼아 2023을 권기 1094년으로 헤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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